톱 페이지 > 용어해설

용어해설

아즈마카가미

가마쿠라바쿠후가 편찬한 52권으로 된 역사서적.1180년으로부터 1266년까지의 정치・사회의 사건 등을 바쿠후 공용 기록,조정의 일기며 고문서류를 수많이 인용하고 일기체재로 기록한 일본최초의 무가기록.

<<가마쿠라쿠>>보

무로마치바쿠후가 간토10개국을 통치하기 위하여 설치한 파견기관인 가마쿠라부에서의 장관으로 대대로 장군의 일가족인 아시카가씨가 임명되였다.

권청

신불의 분신・분령을 다른 곳에 옮겨서 제사지내는 것

<<끽다양생기>>

1214년경에 요사이(1141년~1215년)가 저술한 상하 2권으로 된 서책으로, 차의 종류며 말차의 제조법,신체를 건장하게 하는 끽다의 효용 등이 설명되여 있고 일본에서 끽다의 풍습을 전파한다.

귀문

자고로 귀신이 출입하는 북동의 방위를 가르키고, 만사에 기해야 할 방위로 여겨져 왔다.일본에서는 주택을 위수로 각종 시설의 건설에 즈음하여 이 방위의 억제 (귀신=흉사의 출입을 제지한다)를 중시해 왔다.

군아

일본의 고대율령제도 하에서 군(국군리제의 행정구획의 하나)의 관인(군사)이 정무를 맡았던 관청을 말한다.또한 현재의 가마쿠라시립 오나리소학교의 부지내에 군아가 존재했던 것이 발굴조사에 의하여 명백하게 되였다.

고케닌

고케닌이라는 것은 미나모토노요리토모와 직접 주종관계를 맺은 무가의 호칭인데 후에 가마쿠라바쿠후에 종속하는 정규적인 무가를 가리키게 되였다.

5산제도

선종사원을 5산과 10찰로 나누어 격부를 진행하고, 관위와 마찬가지로 높은 덕망을 가진 승려가 십방주지제 아래에서 높은 격의 절로 천주하는 제도도 포함해, 선종을 국가불교로서 자리매김하고 통제를 진행하는 제도.가마쿠라시대 말에 중국선종사원을 본따서 일본에도 도입되고, 무로마치시대에는 가마쿠라5산,교토5산이 성립되였다.

고시라카원

제77대천황으로 호겐의 난(保元の乱)후, 1158년에 황위를 양보하고 이후 34년간에 걸쳐서 원정(천황이 즉위 후 멀지않아 어린 자신의 아이에게 직위를 양보하고 스스로는 상황(출가의 경우는 법황)으로서 실권을 장악하고 거소인 《원》에서 진행한 정치형태.또한 권력을 행사한 상황이며 법황을 가리키는 용어로서도《원》이 사용된다.)을 전개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고세이바이시키모쿠》

가마쿠라바쿠후의 기본법령으로 일본최초의 무가법이다.미나모토노요리토모이래의 선례며 무가사회의 도리를 기준으로 하고, 고케닌의 권리의무며 영지상속의 규정이 많은 것으로부터, 율령 등의 귀족의 법령에 대하여 바쿠후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후속한 무가법의 기본으로 되였을 뿐만아니라 토지소유에 관한 규정 등으로 현재의 민법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집권

집권은 가마쿠라바쿠후에 있어서 장군을 보좌로서 정무를 총괄하는 자의 직함인데 호죠씨가 바쿠후내에서 실권을 장악한 후는 사실상의 최고권력자로 되였다.

제종겸학

자고이래 일본의 사원은 불교교학의 연구・연찬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는바,가마쿠라에 창건된 사원도 많지만, 한 사원내에서 진언・천대・정토・선・율 등 각 종파의 교학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고 이것을 《제종겸학(諸宗兼学)》이라고 칭했다.

신불분리령

에도시대까지의 신도에서의 신과 불교의 불의 융합상태를 해소하고, 그런 것을 명확히 분리하는 목적으로 1868년에 메이지정부가 제정한 법령.

스즈키다이세츠

19세기말에 엔가쿠지에서 고지젠(居士禅)을 배우고 선에 관한 저작을 영어로 저술하는 등, 20세기 중반을 지나서까지 일본의 선문화를 해외에 널리 알리게 한 불교학자이고 다이세츠는 거사호.

세이이대장군

가마쿠라바쿠후이후 무가정권의 수장의 칭호로, 미나모토노요리토모가 임명된 이후 가마쿠라부쿠후,무로마치바쿠후,에도바쿠후 등 대대의 바쿠후의 수장은 조정에서 세이이장군으로 임명되였다.

폐불훼석

메이지정부에 의한 신불 분리령에 의하여 민간에서 일으킨 불교사원・불상・경권을 파훼하고 승려며 사원이 받고 있던 특권을 폐하는 등의 운동을 말한다.

바쿠후

바쿠후란 원래 귀족정권인 조정에 복종하지 않는 이민족을 토벌하기 위하여 임시로 임명된 사령관인 《세이이대장군》의 진영을 의미하는바,1192년에 미나모토노요리토모가 임관된 이후는 조정으로부터 독립한 무가정권을 표시하게 되였다.

히나단(진열단)조성

입구로부터 경내안으로 향해 단을 이루며 높여가는 조성법.

호죠에(방생회)

포획한 물고기며 새와 짐승을 들에 방생하고 살생을 훈계하는 종교의식으로, 원래는 불교사상이였던 것이 신도에도 도입되고, 수확제며 감사제의 의미도 담아 일본의 신사며 사원에서 고대로부터 진행되여 왔다.

야부사메신지

질주하는 말우에서 적에 활을 쏘는 전통적인 기사의 기술・연습・의식이고, 츠루가오카하치만구에서는 호죠에에 동반되는 행사로서 봉납되고, 미나모토요리토모 이래 현재까지 무가문화의 전통을 지키는 행사로서 이어지고 있다.

레이제이타메스케

레이제이타메스케(1263~1328년)는 가마쿠라시대 중기부터 후기에 걸친 귀족인바,가마쿠라바쿠후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와카(和歌)의 지도자로서 무가문화의 발전에 공헌했다.만년은 죠코묘지 근처에 거주했기때문에 이 곳에 매장되였다.

렌쇼

가마쿠라바쿠후의 직명.집권의 보좌역으로서 1225년에 설치되였다.집권과 마찬가지로 호죠씨 일족이 취임했다.